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밀리안 폰 바익스 (문단 편집) ==== [[독소전쟁]] ==== [[바르바로사 작전]] 당시 바익스는 [[페도어 폰 보크]] 휘하 중부집단군 소속 제2군 사령관으로 참전하였다. [[1942년]] 7월에 개시된 [[청색 작전]]으로 신설된 B집단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. 그리고 바익스는 B집단군을 이끌고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에 참가했으나 휘하 제6군 사령관인 [[프리드리히 파울루스]]가 결국 무릎을 꿇음에 따라 전투에서 패배했으나 2월에 [[원수(계급)|원수]]로 진급했다.(B집단군 휘하 6군 사령관이 원수인데 B집단군 사령관이 상급대장일 수는 없다.) 파울루스가 항복하던 날 히틀러가 격노하면서 "이제 독일군 어느 누구도 원수로 진급하지 못한다"고 말했던 걸 생각하면 다소 기묘하다. A집단군 사령관 [[에발트 폰 클라이스트]]도 원수로 진급했는데 후퇴에 성공한 공적으로 원수가 되었으니 독일군에게는 그다지 좋지 못한 징조였다. 이후 바익스의 B집단군은 [[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]]에도 참전하였으나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무작정 틀어막으라는 히틀러의 무리한 지시가 내려오자 바익스는 후퇴를 청했는데 이 과정에서 히틀러가 열받은 나머지 B집단군을 해체시킨 후, [[에리히 폰 만슈타인|만슈타인]]이 [[겨울폭풍 작전]] 당시 급조했던 부대인 "돈(Don) 집단군"과 합쳐서 새로운 남부집단군을 창설하게 한 후 만슈타인을 남부집단군 사령관에 앉혔다. 이후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다시 편입된 바익스는 [[쿠르스크 전투]]에서 패배한 탓에 강제로 군복을 벗게 되었으나 [[1943년]] 8월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[[발칸 반도]]의 수비를 담당하는 F집단군의 사령관이 되었다. 그러나 소련군이 [[바그라티온 작전|1944년부터 유례없는 대공세를 펼쳐오며]] 위협을 가하자 바익스는 발칸 반도에 주둔한 자신의 부대와 독일 본토 사이가 분단될 것을 우려하고, 후퇴를 건의하여 히틀러의 허락을 받아 [[그리스]], [[유고슬라비아]]에서 철군을 명했다. 다음해인 [[1945년]] 3월에는 또다시 예비역에 편입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